별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여름밤,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어딘가 눅눅한 바람이 불어오고 성준수는 드물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수야.” “왜.” 너 왜 웃고 있어? 전영중의 물음에 성준수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소년의 하얀 뺨은 밤하늘과 대조되어 더욱 더 하얗게 보이고 소년의 눈은 밤하늘을 닮아 별처럼 빛이 났다. 바...
강만음의 등선 소식은 온 수진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삼독성수의 등선이라니. 삼독성수. 그가 어떤 이던가. 손에 피 묻히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일찍이 등선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의 뒤를 따라다녔던 소문을 입에 올리며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어댔으나 사실 그들도 알고는 있었다. 자신이 입에 올리는 그 말이 그저 '소문'일 뿐이라는...
달도 별도 길잡이가 되어주기는 하지만 저 처연하게 빛나는 반딧불이야말로 강만음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길잡이였다. 비라도 내렸는지 풀이 젖어 옷이 척척하게 젖었고 공기가 한층 더 습하게 느껴졌다. 아주 멀리서 구슬픈 노래가락이 들렸다. 만가였다. 구슬픈 음을 따라 반딧불이들이 춤을 춘다. 처연하고 여린 빛. 아른거리는 빛을 따라 한참을 ...
오늘과 어제 사이. 초록밤입니다. 다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누군가에게 오늘은 참 지치고 힘든 하루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오늘은 보람차고 행복한 하루였을 겁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시간이 모두에게 불공평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이 신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요. 정답도 모르겠고 길도 모르겠는 인생. 승패도 없는데 지는 기분이 드는 날이...
연화오에 손님이 오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모든 객을 반긴다는 연화오는 때로는 인간이 아닌 자들도 객으로 기꺼이 받을 때가 있었으므로, 행색이 이상하다거나 얼굴을 가리고 있다거나, 어린아이 체구로 늙은이의 목소리를 낸다거나 반은 여인의 모습이고 반은 사내인 사람도 밤이 되면 뱀으로 변하는 객도 내치는 법이 없었다. 물론 사람이 아닌 그런 기묘한 객들에...
금빛 잎사귀들이 바람에 출렁거렸다. 노을에 물들어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고소 남씨 직계들은 태어날 때 입에 금빛 씨앗을 하나 물고 태어난다고 했었다. 훗날 관을 짤 때 쓴다고 했던가. 남희신은 조금 쓰게 웃었다. 이 나무로 짠 나무는 아주 특별하다고 했다. 얼마나 특별하냐면 죽어가는, 혹은 죽은 이를 살릴 수 있으며 신의 능력까지 빌...
얘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네가 들고 있는 당과를 내게 주겠느냐. 옳지. 그래. 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설의 명맥을 이어주는 아주 착한 사람이지.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용에 관한 이야기란다. 이무기에서 용이 되는 존재 말고 태초의 신 말이야. 맞아. 오히려 그는 용에서 이무기가 된 자지. 그...
외로운 이의 손에서 꽃이 피네 향은 길이 되어 물에 잠긴 달 조각을 깨웠네 깨어난 조각은 문을 만들어 속삭였지 이리로 오시오, 이리로 오시오. 피어난 꽃을 뿌리며 외로운 이가 걷네 향으로 만들어진 길을 사뿐사뿐 밟고서 달 조각이 만든 문을 조금 열었지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조각이 아닌 용 샛노란 용이 외로운 이를 불렀네 이리로 오시오, 이리로 오시오 외로...
어떠한 이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이제는 얼굴도 어느 가문의 여식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지만, 그 질문만은 또렷했다. 어떠한 이를 좋아하냐는 그 질문에 남희신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어찌 문장이 유려하며 필체가 아름다운 이라 답할 수 있겠는가. 그리 답한다는 것은 곧 상대의 문장과 필체가 엉망이라 말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하여 남희신은 그저 머쓱하게 ...
거리가 한산했다. 별일이 다 있네. 강만음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원래 사람으로 붐벼야 할 시간에 이리 한산한 거리를 걷고 있으니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북적이는 거리보다 한산한 거리가 더 좋았기에 불만은 없었다. 낯선 사람고 어깨를 부딪힐 일도 없는 지금, 강만음은 콧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저 남자와 얽히지 마십시오.” “네?” 정정한다. 거...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강풍면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미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더 아픈 손가락이 위무선이었을 뿐이지. 위무선이 그에게 더 아픈 손가락이었던 까닭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고 제멋대로 굴며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우자연 앞에서는 기를 제대로 못 폈기 때문에 짠하였으리라. 아마 어린 금여란이 홀로 금린대에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는...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이었다. 늘 조용하고 평화로운 운심부지처였으나, 오랜만에 소란이 일었다. 야렵을 핑계로 세상 구경을 하고 있던 남망기와 위무선이 돌아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강만음이 위무선에게 받을 물건이 있다며 운심부지처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인 듯 친구인 듯 먼 듯 가까운 듯 강만음과 위무선의 사이를 정의하자면 그랬다. 선을 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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