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기산 온씨 객경이었던 자가 세운 작은 세가는 기운이 몹시 난잡한 곳에 있었다. 하기야 화를 입지 않기 위해 피하고 피해서 터를 잡았으니 이렇게 된 것이리라. 기운이 센 만큼 근처에는 요수가 많았고 척박한 땅이나 거기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의뢰를 넣었고 하여 가문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는 돈을 벌고 있는 모양이었다. 변형하였다고는 하나, 기산 ...
남희신과 강만음이 크게 싸운 이유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다만, 평소에는 소소한 언쟁을 하다가 강만음의 손을 잡고 속상하다는 말을 뱉는 남희신의 모습과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 다짐하는 강만음의 모습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제법 심각하게 언쟁이 지속되었다. 아마 강만음의 부상의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리라. 강만음은 몸을 아끼는 법을 몰랐다. 돌아간...
종주의 생일은 그저 생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었다. 생색 낼 수 있는 선물을 하고서 어떠한 기회를 엿보는 우아하고 온화한 술수가 판을 치는 날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없이 축하를 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글쎄. 화려하게 옷을 입고 온 타 가문의 종주들을 보며 강만음은 혀를 찼다. 저들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긴 하다. 운심부지처의 종주 남희신의...
강희신은 난감하게 웃으며 곁에 선 이를 보았다. 심하게 장난친 벌이라며 장서각 정리를 시켰으면서 감시자로 남징을 붙여줄 것이 뭐란 말인가. 하필이면 제일 장난치고 싶은 상대를 말이다. 자기 장난으로 인해 남징이 얼마나 곤란했고 책벌을 받은 횟수가 늘어났지는 알면서도 곁에 붙여둔 이유가 뭘까. 그리고 강희신이 저지른 사고 중 태반이 남징을 놀리다 생긴 일이었...
봄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내렸고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향기로 그득한 공기. 강만음은 모처럼 일을 손에서 떼고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었다. 일거리를 다 떠맡은 부사는 우는 얼굴로 어찌 이러시냐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늘 과로하던 사람이 쉰다는 기쁜 소식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설득력이 없는 억울함이었다. “하긴 쉬셔야죠. 새신랑 얼굴이 엉망이면...
보통 맥은 악몽을 먹어 치우는 존재라 불린다. 그 악몽이 다시 생겨나고, 다시 생겨나고 또다시 생겨나면 그때도 맥이 나타나 그 악몽을 먹을까. 남환은 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의문을 품었었다. 맥이 악몽을 먹은 것은 사라진 것이지 이겨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겨내지 않은 악몽은 언제고 다시 살아날 것인데, 오히려 전보다 더한 상상이 붙을 것인데 그...
생을 쥔 강만음이 주변을 살핀다. 사위가 고요하다. 등 뒤에 달라붙어 저를 부르던 소리가 사라졌고 오직 고요만이 강만음의 곁에 남았다. 강만음은 느리게 뭍으로 올라온다. 여전히 손에는 생이 남아 있다. 마침 바람이 불어 강만음은 바람결에 생을 날려 보낼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소중하게 혹은 경건하게, 어떤 것을 빌 듯, 품 안에 넣고는 주저앉았다...
강만음은 잠을 자는 것을 포기했다. 악몽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잠을 안 자는 것이 속이 편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식솔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그래서 잠을 아니 자면 어쩌냐 성화였으나 내막을 대충 아는 부사와 그러는 연유를 샅샅이 아는 남희신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강만음은 한두 번이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었지만, 식솔들은 겁을 먹...
푸름이 꺾인다. 푸름을 뚫고 붉음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밤공기가 부쩍 싸늘해졌다더니. 강만음은 두꺼워진 옷감을 쓸어보다 한숨을 쉬었다. 가을이니 그 반신이 깨어날 시기였다. 가을철 뱀들이 품은 독이 제일 독하다 했던가. 그런 낭설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탓일까. 하필 그 반신이 활동을 하는 것이 가을이고 겨울 초입에 다시 잠잠해진다는 것은. 음,...
담쟁이덩굴이 바람에 부딪힌다. 단단한 잎사귀들이 부딪히자 사사사사사 하는 소리가 났다. 푸른 소리다. 아니다. 저것은 시린 소리다. 남희신은 손에 들린 잎사귀를 보다가 제 생각을 얼른 정정했다. 꿈. 남희신은 종종 강만음의 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꿈은 항상 행복했다. 사제들과 잠수 대결을 하는 강만음. 위무선과 칼싸움을 하는 강만음. 강염리와 길거리에 ...
연화오가 발칵 뒤집어졌다. 물놀이를 하고 있던 강만음과 위무선이 별안간 사라진 까닭이었다.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는 반쯤 부서져 발견이 되었고 그 부서진 잔해에 아이들의 찢겨진 옷자락이 붙어있었으므로 사람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두 아이가 사라진지 두 시진이 지났을까. 연화호를 샅샅이 뒤지던 강풍면은 인적이 드문 뭍에 쓰러져 있던 위무...
금여란은, 어른들이 참 제멋대로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때는 지나치게 아이 취급을 해 기분을 상하게 하더니 어느 때는 너도 이젠 이해할 때니까, 하며 배려 없이 불편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곤 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데? 누군가 묻는다면 금여란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의견을 물어봐달라고.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이러한 일이 있는데 네가 듣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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